본문 바로가기
혼자여도 괜찮아(연재)

[혼자여도 괜찮아 1화] 아이의 생일, 그날의 시작

by 다시 시작하는 엄마 2024. 12. 27.
반응형

 

[혼자여도 괜찮아 1화]
[혼자여도 괜찮아 1화] 아이의 생일, 그날의 시작

[혼자여도 괜찮아 1화] 아이의 생일, 그날의 시작

 
결혼한 지 10년, 나는 남편과 장거리 부부로 살아왔다. 남편은 2~3달에 한 번씩 집에 왔고, 그마저도 며칠 머물다 다시 떠나곤 했다.
처음에는 이런 생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있다면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아이를 향한 사랑만 있다면 충분할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고, 남편은 가끔씩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딸 아진이와의 일상에 모든 마음을 쏟으며 그의 빈자리를 채우려 했지만, 그가 남긴 거리감은 메워지지 않았다.
‘지금은 바쁜가 보다.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나는 스스로를 속이며 그가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돌아온 것은 점점 커져가는 공허함과 외로움뿐이었다.


“엄마, 내 생일 얼마 안 남았지?”
아진이는 며칠 전부터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며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손가락이 생일 날짜를 가리키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딱 5일 남았네. 아진이 생일엔 뭐 하고 싶어?”
“아빠한테 피아노 사달라고 할래!”

 
아진이는 피아노를 사달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나 보다. 피아노를 배우고 나서 부터 피아노를 갖고 싶다고 졸랐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남편과의 통화는 갈수록 뜸해졌고, 연락을 해도 “바쁘다”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다. 그래도 아진이의 눈망울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 아빠한테 전화해 보자.”
 
아진이는 환한 얼굴로 전화를 걸었다. 긴 신호음 끝에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나 생일인데 선물로 피아노 사주면 안 돼?”

 
아진이의 목소리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짧은 설렘은 곧 무너졌다.
 
“아빠 팔아서 사.”
뚝.
 
그 차가운 대답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아진이는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아빠 팔아서 사라는 거야?”

 
그 말이 농담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빠가 농담한 거야. 피아노는 엄마가 이야기해 볼게.”

 
아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도 물었다.

 
“아빠는 내 생일날 꼭 전화할 거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빠가 바빠도 꼭 전화할 거야.”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작은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혼자여도 괜찮아 1화]
[혼자여도 괜찮아 1화] 아이의 생일, 그날의 시작



생일날이 되었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
아진이는 해맑은 얼굴로 물었다. 그 속엔 아빠를 향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만 기다려보자. 아빠가 바쁘신가 봐."
 
그날은 아진이의 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아진이는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며 아빠와 함께 케이크를 자르고 선물을 열어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빠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그 사실을 아이에게 숨겨야 했다.


생일 파티 준비는 완벽했다.
아진이가 직접 고른 초록색 리본으로 포장된 선물 상자, 생크림 위에 초콜릿으로 적힌 "Happy Birthday, 아진!"
모든 게 준비되었지만, 단 하나가 없었다.
아빠.
 
"엄마, 아빠는 정말 바쁜 거야?"
아진이는 식탁 옆 의자에 앉아 초가 꽂힌 케이크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케이크의 초에 불을 붙였다.
"우리 먼저 소원부터 빌어보자, 아진아."
 
아진이는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촛불이 흔들리는 빛이 아이의 얼굴을 비췄다.
나는 아이의 입술이 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 소원은 절대 말로 하지 않겠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아빠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내 가슴은 그 순간 찢어질 듯 아팠다.
 
아이가 눈을 뜨고 촛불을 불었다. 하지만 내 안의 촛불은 꺼져버린 듯했다.
그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아이의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낼 걸 나는 알았다.


그날 밤, 아진이는 아빠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결국 잠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텅 빈 식탁으로 돌아왔다. 휴대폰이 울렸다. 은행 알림이었다.
 
"150만 원 입금: 생활비."
 
나는 화면을 보며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150만 원.
숫자였다. 숫자는 우리 아이의 상처를 치유해주지 못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건 생활비라는 숫자와 텅 빈 자리가 전부였다.
 
그날 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입금’ 메시지만 남아 있었다. 아빠의 연락을 기다리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생일날조차 연락 한 통 없는 아빠.
그 순간 나는 알지 못했다. 이것이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다음 화 예고: 생일 이후
아빠 없는 생일 이후에도, 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잘 지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와 나는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냈다.
너의 빈자리는 없던 것처럼.


 
 

반응형